프롤로그 (2)
2025/07/13
직원 구역 내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길고 복잡했다.
휴게실 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연구기지의 지하마냥 미로가 쭉 펄쳐져 있었다.
1번 방과 2번 방 사이의 거리는 왜 이렇게 먼지, 2번 방과 3번 방 사이에는 왜 이리 빠지는 길이 많은지.
처음 방문하는 남매에겐 이해도 안 되고 납득할 수도 없는 설계였다. 도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라 하기엔 또 너무 대충이었다. 남매는 지금껏 번호가 붙은 방 앞에 도착할 때마다 하나씩 문을 다 열어보고 있었으니까.
국장은 무슨 이유에서 두 사람에게 문을 열어준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구경하느라 시간을 꽤 썼는데 지금껏 한 번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남매가 만약 나쁜 의도를 갖고 있었으면 지금쯤 전리품을 하나씩 챙겨 달아나고도 남았다.
실제로 남매가 본 전리품들은 대개 품 안에 숨길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았다. 보석처럼 환하게 빛나는 것도 있고 김을 피어올리는 것도 있었지만, 훔치고 싶어 숨어든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은닉해 갈 만한 방법을 고안해 왔을 테니 별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물론 비상벨이 울리겠지만…… 요즘 시대엔 도둑에게 초능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리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남매에게 이렇다 할 만한 답이 있을 리 없었다. 두 사람은 결국 ‘구경이나 잘 하고 가자’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4번 방, 또 5번 방으로 향하면서 그 질문도 곧 머리에서 잊혀졌다. 언젠가부터는 빨리 특별전시실 티켓을 받겠다는 원래의 목적도 가물가물해졌다. 방 안에 보관된 전리품들은 그만큼 하나같이 놀라운 것들이었다.
전리품을 보관한 방 옆에는 연구자들이 남기고 간 듯한 연구 일지가 있었다. 아직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소년을 위해 소녀가 열심히 설명을 도맡았다.
예를 들면, 3번 방의 붉은 보석은 한 시간 동안 100도의 열을 가했을 때 1기가와트의 에너지를 방출한다고 한다. 이건 태양광 패널 백만 개가 만들 수 있는 에너지보다 많고, 대형 풍력발전 터빈 백 개가 만들 수 있는 에너지와 비슷하며 미국의 후버 댐이 만들어내는 총량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인데도.
다른 방의 전리품들도 비슷했다. 규모나 분야에서 차이는 있지만 무척 놀라운 일을 해낸다는 사실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가 왜 밤낮 없이 전리품 연구에 매달리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왜 전장에 머물면서 사투를 그만두지 않는지도.
그 중요성이나 무시무시함을 깨닫는 건 남매에게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마음 한 구석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런 게 수백 개, 수천 개나 있으니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당연했다.
7번 방 문을 나설 때쯤엔 두 사람 다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지금껏 박물관에 갈 때는 어디까지나 기분 전환용이었다. 전리품들이 굉장한 일들을 하고 세상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큐레이터들도 말하지 않았고 인터넷에도 그런 내용은 올라와 있지 않았다.
오늘은 달랐다.
늘 주말마다 부모님은 남매를 보러 왔다. 지난 주에도 그랬고, 이번 주도 다음 주도 마찬가지일 게 뻔했다. 하지만 지금 남매의 마음 속엔 금요일의 기쁨보다는 앞으로 평일에 부모님과 대화할 시간은 없으리라는 예감밖에 없었다.
티켓은 더 이상 남매의 머릿 속에 없었다. 오늘은 더 이상 박물관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동백 아저씨 얼굴만 보고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다.“왜 8번이 아니라 9번이지?”그런데 다음 방 번호가 이상했다.
분명 7번 방을 나와서 앞으로 쭉 걸었고, 그 사이에 달리 새는 길은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에 나오는 방은 8번이어야 할 텐데, 남매의 눈 앞에는 9번이라고 쓰여 있었다.이상하다 싶어 다시 돌아가 봐도 8번 표지판은 없었다.
복도는 일직선이었으니 8번이 있다면 7번과 9번 사이에 있는 게 당연할텐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8번 방은 보이지 않았다. 남매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소년은 나중에 아저씨를 만나면 한 번 제대로 따져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아저씨부터 찾을까? 아니면 이왕 온 김에 여기도 한 번 보고 갈래?”
“그래. 구경 몇 번 더 한다고 있던 사람이 없어지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소년은 성큼 걸어가 9번 방 문을 열었다. 다른 방들처럼 수월하게 열렸다. 어쩐지 더 매끄럽게 열린 것 같기도 했다. 힘을 주어 손잡이를 돌리기 전, 손잡이를 잡은 순간 이미 문이 열리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방 안의 느낌은 여러모로 달랐다.다른 방은 정말 ‘연구실’ 같은 느낌이 났다. 전리품들은 밖에서 만질 수 없게 통 안이나 벽 뒤에 보관되어 있었다. 계기판이 여럿 늘어져 있고, 실시간으로 작동 중인 컴퓨터라던가 현미경 같은 기자재들도 책상 위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9번 방은 ‘사무실’ 같은 분위기가 더 강했다. 기자재들의 수도 훨씬 적었고, 무엇보다 전리품이 밖에 나와 있었다. 누구라도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지 않기 때문인지 유난히 존재감이 강했다.
방의 중앙에는 기둥 형상의 전리품이 있었다. 결코 작은 크기는 아니었다. 소년이 양 손을 좌우로 힘껏 뻗어도 반지름만도 못할 것 같았다.
겉에서 보기엔 조금 특이한 돌기둥일 뿐이었다. 다른 것들처럼 가만히만 있어도 화려하게 빛을 낸다거나, 항상 표면이 고열로 끓어오르고 있다거나 하는 특징이 전혀 없었다.그나마 하나 있는 모니터에는 ‘특이현상 없음’이라는 말 한 마디만 10분에 한 번씩 표시될 뿐이었다. 나라에서 가장 큰 박물관에 굳이 시간을 내서 전시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특징이라곤 표면이 매끄럽다는 것과 새까맣다는 것뿐.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빨려들어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새까맸다. 확실히 섬뜩해질 정도였지만 그 외엔 전혀 특이한 점이 없었다. 수학 문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평범한 사각기둥이었다.
문득 소년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8번 방의 천장에도 다른 방처럼 환하게 빛나는 전등이 달려 있었다. 빛이 방 전체에 닿고 있으니 아무리 표면이 매끄럽다곤 해도 돌기둥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분명 확인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돌기둥에 대해 남매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검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표면이 유리처럼 일자로 깎인 거라면 빛이 비칠 때 거울처럼 맞은 편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라 몽땅 흡수하는 것 같았다.
자기에게 오는 것만 골라서.
“이건 되게 신기하다. 그치? 마치 기적 같아.”
“응, 그러게…….”소년은 한참 동안 돌기둥을 바라보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 다음엔 차분히, 그 다음에는 과감하게.
돌기둥과의 거리는 점차 좁혀졌다. 어느새 팔을 뻗으면 손바닥으로 밀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소년은 잠시 말 없이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누이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호기심, 기대, 불안, 망설임…… 소녀는 그 모든 것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이거, 밀어 볼까?”
소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건네는 것은 한 마디뿐, 그 외에 무언가를 더 덧붙이지는 않았다.
“내가 없어도, 이젠 잘 해내겠는걸.”
소년의 손바닥이 앞으로 쭉 뻗어 검은 표면에 닿았다.힘 주지 않고 툭, 하고 부딪히며 기둥을 앞으로 밀었다.
기둥이 밀려나진 않았다. 부피나 질량 면에서 차이가 있으니 힘껏 밀어도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반지름이 160cm를 넘는 돌기둥이라면 1톤 남짓 나갈 게 분명했다.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년은 손바닥을 다시금 돌기둥 위에 올렸다. 이번에는 밀지 않고 계속 표면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에도 잠시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몇 초가 지나자 무언가 기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처음에는 기둥 표면에 일렁이는 물결 같은 게 생겨났다. 다음 순간 물결은 빠르게 요동치며 기둥 전체로 퍼져나갔다. 소년이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어냈지만 이미 일어난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누나, 좀 이상한⋯⋯.”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무언가 잘못된 느낌에 서둘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기둥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방 안에 있던 모니터나 전등도 보이지 않았고, 방 문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시간이 흐르자 돌기둥조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년은 이제 방 안에 있지 않았다.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소년은 이제 스스로 숨을 쉬곤 있는지, 살아는 있는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력해서 공포를 느낄 여유도 없었다.
이윽고 시야에 메시지 두 줄이 떠올랐다.
[REPORT: 수복 불능.][REPORT: 치명적 피해 탐지. 현재 몸이 원자 단위로 분해되어 있습니다. 생명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인류 무의식과의 대조가 필요합니다.]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었다. 소년에 대한 평가는 아닐 것 같았다.주위가 어딘지를 알 수 없을 뿐, 분명 스스로가 변함없이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하지만 확실히 시간이 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고, 배가 고프거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손을 가슴에 올려보니 심장 박동도 느낄 수 없었다.어쩌면 정말로 죽은 것은 아닐까? 소년의 머리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메시지는 그 동안에도 한 줄씩 새로 추가되고 있었다. 지겹지도 않는 것 같았다.
[WARNING: 인류 무의식에 접속할 수 없습니다. 인류 인증을 재시도 해주세요.][WARNING: 현재 개체를 인류로서 인증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현재 개체가 인류로서 적합한지 체크해 주세요.][WARNING: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주세요. 현재 개체는 인류로 추정되지만, 인류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기술적 도움이 필요하신 경우 가장 가까운 성좌단에 문의해 주십시오.]입을 벌려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겨났다. 질문이 생길수록 초조해졌고, 메시지를 읽을수록 불안해졌다. 보면 안 되는 걸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ERROR: 현재 개체의 무결성 체크를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인류 무의식에 다시 연결할 수 없습니다. 현재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경우 영구적 단절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ERROR: 현재 개체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인류 무의식에 기록된 기초값이 유전자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현재 상태가 유지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ERROR: 인증되지 않은 변화가 감지됩니다. 치명적 피해가 초래될 수 있으니, 동의하지 않은 경우 해당 성좌단에서는 속히──]
뚝.메시지는 더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중간에 끝나버렸다.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년이 죽어가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죽어가고 있으니 인류가 일원으로서 받을 수 없는 것일테고, 유전자도 풍화되고 있을 테니 인류의 표본과는 많이 다른 것일 테다. 대체 왜 이런 메시지가 눈 앞에 보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잘 맞는 설명이었다.하지만 정답을 맞춰도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을 더욱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그걸 오래 만지고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는다니.그렇게 위험한 거라면 바깥에 왜 아무런 가림막도 없이 내놓은 건지.하루만 지나면 토요일이다. 그럼 가족 넷이 다 같이 모일 것이다. 오랜만에 한강 나들이도 다 갈 수 있었을 거고, 저녁도 다 같이 먹을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졌다.
어쩐지 아까와 달리 몸이 한 덩어리가 아닌 것 같았다.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되자 겁이 나고 패닉이 밀려왔다. 이대로 끝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누나에게 너무 미안한데.소년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떨어뜨릴 때쯤이었다.
“고개를 들도록. 네 육체라는 것이 생각보다 섬세하게 설계되어서 도로 이어붙이는 게 예상한 것보다 오래 걸릴 뿐이다.”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껏 소년이 살면서 들었던 그 어떤 소리보다도 아름답고 깊은 소리였다. 파도가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것보다 청량했고 쌓인 눈 위를 부드럽게 걸어가는 것보다 부드러웠다.
“인류라는 종은 역시 위로도 아래로도 한계가 없는 모양이야. 이 정도의 수준에 이렇게나 빨리 도달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토록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한 게 납득이 가는군⋯⋯. 복 많은 남자로구나, 너는.”
훗. 가벼운 웃음 소리가 옅게 울렸다.“원자 단위에서 원래대로 돌려놓을 테니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다. 더 강해진다면 강해지지, 후유증이 남거나 잠재력이 떨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을 거다.”
어쩐지 저 멀리에 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목소리가 이어질 수록 차츰 강해졌다.
“하지만 난 마음이라는 걸 이해할 정도로 생명에 조예가 있진 않아. 원자 단위에서 똑같이 재조립하긴 했지만, 그 부분에서까지 완벽하게 복구할 수 있다곤 말할 수 없어. 다른 인간들에게 네가 같은 인류로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심해도 좋아. 네 능력은 언제나 네가 대적할 존재보다 위에 있을 테니.”
이젠 다른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누군가 달려오는 소리. 공포로 가득한 비명 소리. 사람들이 말다툼하고, 고함을 지르고, 물건들이 바닥에 부딪히거나 깨지거나 하는 등 하나같이 요란한 소리들이었다.본능적으로 깨달았다.소년은 이제 방으로 돌려보내지고 있었다.
“네 누이는 널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지불할 수 없는 대가를 지불했어. 그 의미를 잊지 마라. 네 목숨은 이제 너만의 것이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제대로 말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목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주 잠깐,
선명한 풍경이 뇌리에 박혔다 사라졌다.
⋯⋯.
하얀 벌판.
땅에는 온통 눈이 흩뿌려져 있다.새하얀 꽃들이 옅은 바람을 따라 일렁인다.누군가를 애도하는 듯한 꽃의 바다. 그 안에서 무심히 별 하나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자 한 명.빛 바랜 명화 같은 그 모습은 짧게 봤다고 잊혀질 것이 아니고,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잊을 수 있는 순간은 꿈이 끝나는 순간.그 때가 되기 전까지 담고 가는 것은 본인의 의무라는 걸, 소년은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실감할 수 있었다.
“정신이 드니? 괜찮아?”
다시 눈을 뜨니 낯익은 곳에 있었다. 9번 방이었다. 여러 사람이 소년을 둘러싸고 있었다. 구급대원도 있었고, 그토록 찾아 헤메던 동백 아저씨도 있었다. 저 멀리선 어머니와 아버지가 양형민 국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그늘 가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없었으니까.좀 전까지 누나가 있었던 자리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눈이 길게 흩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냉방기가 돌아가지 않는지 여름 더위가 그대로 느껴졌다.하지만 눈은 그대로였다.녹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앞으로도 녹을 것 같지 않았다. 소년은 말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