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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6: Immigrant Song (2)

2025/08/20 업로드

두 사람을 맨 처음 위협한 기계 병사의 번호는 141이라는 것 같다.

여전히 복도는 음울한 분위기의 짙은 붉은 빛 조명으로 가득했다. 세경은 벽 뒤, 천장 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곳에서 기계들이 두 사람에게서 적대적 행위나 정황을 찾아내려 시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비단 증거 없는 상상이 아니었다.

1층에 처음 발을 내딛은 그 순간에 세경은 오른팔을 아주 얇은 에너지 막으로 감쌌다. 처음엔 딱히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에너지 막은 1초마다 네다섯 번씩 외부로부터 접촉을 받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었다.

세경은 이것을 기계들, 특히 카메라로부터 나오는 빛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공간 열차의 1층은 관계자 외의 출입이 통제되는 장소다. 침입자를 구별하기 위한 센서가 없을 리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수많은 카메라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게 뻔했다.

“현재 유닛 448은 바이러스에 의해 동족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 모두를 적으로 인지하고 공격 행위를 멈추지 않지. 그를 동면시켜야만 했다.”

두 사람을 안내하던 기계 병사가 느닷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다 왔다. 유닛 448이 보관된 방은 바로 이 앞에 있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눈에 띄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유닛 448이 동면한 장소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동결했다. 정보가 새 나간다면 분명 인간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

“동결이라니. 접근을 막았다는 뜻인가?”

“보안 상 출입이 어려운 장소일 뿐이다. 하지만 ‘좌표’를 안다면 다른 절차를 모두 건너뛰고 들어갈 수 있다.”

“URL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마우스로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렇다.”

141은 별 것 아닌 것처럼 표현했지만 그건 공간이동과 다를 게 없었다.

물리적으로 서로 떨어진 두 별개의 공간을 하나로 이어붙인다는 점에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동과 원리는 정확히 같았다.

차이는 디테일한 부분에 있었다. 뒤떨어지는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더 고도화된 점도 있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동 기술은 좌표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목적지에 이미 갔다 온 적이 있거나 모습을 그릴 만큼 충분한 정보가 있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이 오는 걸 막을 방법도 없다.

병사들이 쓰는 방법은 마법사들의 방법에 비해 확실히 더 불편하고 번거로웠지만 그만큼 안전했다.

생각해보면 FAFT, 즉 이 아공간 열차와 원리가 비슷했다. ‘좌표’가 어떤 형태의 정보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열차로 바뀌었을 뿐, 141이 말한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세경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생각들이 흐릿하게 물결쳤다.

“유닛 448은 바이러스가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공격 행위를 계속 반복할 것이다. 우리는 추가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제거 과정에 관여할 수 없다.”

“그 ‘제거 과정’에서 소실될 부품은 어떻게 할 예정이지?”

기계 병사들은 하드웨어를 교체할 수는 있어도 소프트웨어를 수리할 수는 없다. 원래부터 소모품으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순환하는 부품을 파괴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같은 기계 병사의 경우엔 그 과정에서 똑같이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세경의 조력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은 부품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공장으로 보내 수리하면 된다.”

“문제 없군. 열차가 다시 달릴 수 있도록 준비나 해 둬.”

덜커덕, 톱니바퀴가 맞붙여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단조로운 기계음이 잠시 반복되다가 문이 열렸다. 세경과 베라의 앞에는 또 다른 복도와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치료 대상은 그 문 너머에 있었다.

이제 두 사람은 141과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당초 생각한 것과 꽤 다른 느낌의 일이 된 것 같지 않아?”

복도를 가로지르는 동안 문득 베라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 되리라곤 나도 생각 못 했어.”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냐, 교수님. 그 유닛을 정상 상태로 복구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거지?”

베라는 고개 돌려 세경을 바라보았다.

차분히 질문을 던질 뿐임에도 선명한 무게가 느껴졌다. 거리를 두고 무언가를 시험, 측정하려는 듯한 태도였다.

“교수님에게 고장난 유닛을 복원해 낼 실력이 있다는 걸 의심하진 않아. 하지만 짐작하다시피 이건 기업에 대한 적대 행위에 가까워.”

“잘 알고 있어. 엄청 큰 기업에 대한 적대 행위지.”

“모를 거라곤 생각하진 않았어. 당신의 눈동자에 한 치의 불안도 비치지 않는 것이 놀라울 뿐이지. 이 작은 행동이 큰 불운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잘 알 텐데.”

그녀의 말은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이득만 생각하는 사람에겐 지금 세경의 선택이 아주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회사에겐 이익을 추구하는 건 생물의 본능과 같은 행위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 자체를 물고 늘어질 순 없다. 게다가 예로부터 거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한 사람에게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복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멀어지는 게 자신에게 이로울 게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들은 기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 의식이 얼마나 인간의 것만큼 복잡하고 기묘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엄연히 의식이 있는 존재를 소모품처럼 쓸 만큼 쓰고 ‘유통 기한’이 지나니 처분하는 것엔 문제가 있었다.

기분 나쁘다거나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세경이 보기엔⋯⋯.
그저 비겁한 행동이었다.

모든 행동엔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세경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거대한 기업이라고 해서 행동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분명 살아 있는 존재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조건을 갖다붙일 생각은 없어.”

세경은 힘주어 말했다.

“그런 걸 생각할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게 낫지.”

닫힌 문에 손을 대자 잠겼던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열리기 시작했다. 조금씩 문 너머의 풍경이 드러났다.

“너는 들어갈 수 없다. 들어가는 것은 수리할 방법을 아는 인간뿐이다.”

문이 다 열리자 141이 베라를 가로막았다.

“하아. 손재주 없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이리 각박해서야.”

베라는 능청맞게 반응했지만 기계 병사는 전혀 말투를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잘 다녀와, 교수님. 난 여기서 스파링이나 하면서 기다리지 뭐.”

세경은 짧게 혀를 차고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방 중심을 향해 더 깊숙하게 들어오자 뒤에서 천천히 문이 도로 닫혔다.


등 뒤에서 얇은 소리가 들려왔다. 세경은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관찰했다.

무엇인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엇일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448이었다.

세경이 방 안으로 들어온 직후 침입자를 감지하고 깨어났을 것이다. 좀 전까지는 아무도 없으니 절전 모드겠지만.

지금의 448은 맹수나 다름없었다.

다른 병사들처럼 논리를 통해 생각하고 결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주변에 다른 게 있으면 적으로 판단하고 없애고 싶어할 뿐이다. 모든 판단은 어떻게 하면 상대를 제거할 수 있을지를 초점에 두고 이루어진다.

뜻대로 전황이 흐르게 내버려 두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448이 이미 오른쪽 뒤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세경은 일부러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예상한 대로 448이 속도를 유지한 채 세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움직임이 빠르고 거칠었다. 스프링에 막 튕겨 나온 것처럼 불규칙적이었다. 아무런 계산이나 예측도 없이 짐승처럼 달려들 뿐이었지만 그래서 더 위험한 점도 있었다.

“치료 이전에 제압부터 해야겠어.”

448은 왼팔 자리에 꽂힌 철제 기둥을 거세게 공중에서 휘둘렀다. 하지만 세경은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에 계속 흐르고 있던 에너지 막이 벽처럼 펼쳐져 448의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141과 아주 비슷했다. 사실상 똑같았다. 차이점은 딱 하나 뿐이었다. 141에겐 왼팔이 있던 자리에 448에겐 무기가 붙어 있다는 것.

예리한 칼이나 톱 같은 게 아니라 둔기였다. 철제 기둥 여러 개를 조악하게 이어 붙인 기묘한 형태였다. 그 무게나 가속도로 볼 때 한 번만 스쳐도 사람 머리를 토마토처럼 뭉갤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철근들은 바로 다른 유닛들의 골격이었다. 몇 개를 뜯어낸 것인지 세기도 어려웠다. 팔이 괴상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폭주 중인 기계 병사에겐 그런 걸 판단할 만한 능력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448은 에너지 벽을 향해 계속해서 철기둥을 휘둘렀지만 벽은 무너지긴 커녕 금조차 가지 않고 세경과 병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삑삑 하는 단조로운 소리가 두세 번 울렸다.

새로운 위험 요소를 평가하는 중이었다.

스스로의 행동이 적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마침내 깨달았다. 그러나 바이러스 없이 평소의 지적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더 빨리 알아차렸을 것이다.

기계병은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현재의 무기로는 벽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세경은 448이 우회해 벽이 없는 곳을 공격할 거라고 예측했고 그대로 되었다.
물론 그 벽은 세경이 능력으로 즉석에서 만들어 냈고 어느 방향에서 공격해 오든 그에 맞추어 만들 수 있었다. 원래라면 차분히 분석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바이러스가 생각을 마비시켰기 때문에 평소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판단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멀쩍이 물러났다가 왼쪽 위에서. 또 한 번 뒤로 뛰었다가 이번에는 오른쪽 아래에서 한 번. 당연하지만 둘 다 유효타가 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떻게든 힘으로 깨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위에서 거세게 내리쳤다. 효과가 있든 없든 계속 힘으로 부딪혔다.

하지만 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고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맹목적으로 계속 휘둘러지던 철근은 어느 순간 공중에서 맥없이 멈추었다.

세경이 기둥 중간을 오른발 바닥으로 눌러 멈춰세웠기 때문이었다. 왼다리는 바닥에 고정하고, 양손은 여전히 바지 주머니에 꽂아넣은 채로.

기계 병사는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나타난 사슬에 감겨서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환자분, 수술 시작한다. 금방 끝날 거야.”

세경은 한쪽 손을 주머니에서 빼내 448을 향해 뻗었다. 보라색 에너지가 파도처럼 기계 병사의 몸을 뒤덮었다.

기계 병사들이 과연 존엄성이라는 걸 알까? 그러나 그들이 직접적으로 그 개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세경이 보기에 그 개념은 그들의 의식 아래에 이미 존재하는 듯했다.

141이 감염을 우려하는 이유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흉포하고 지적 능력이라곤 온데간데 없는 모습으로 남는 건 기필코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신임 교수로서 요청을 제대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보라색 에너지가 기계병의 몸을 다 휩쓸고 나자 몸 여기저기에 똑같은 보라색을 띈 표식들이 나타났다. 바이러스가 깊게 영향을 미치는 부품들이었다.

그런데 위치가 어딘가 이상했다.

머리 아래 골격에는 그렇게 표식이 많지 않았다. 열 개 중 척추에 위아래로 붙은 두 개뿐이었다. 머리 쪽에 나머지 여덟 개가 몰려 있었다.

물론 사람처럼 기계 병사들도 머리에서 생각이나 추측을 담당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바이러스는 기계 병사들의 부품(하드웨어)에만 영향을 미칠 뿐 회로(소프트웨어)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처음에 세경은 바이러스를 수십 개 가까이 배치해서 생각 리소스를 과부하시켰을 거라고 예상했다. 바이러스를 두개골 즈음에 주입하면 기계 병사들은 폭주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얼어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러난 것은 예상한 것과 달랐다.

그건 절대 원격으로 가동된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프로그램으로 끼워넣었던 거군⋯⋯!”

세경은 어처구니 없어서 혀를 찼다. 그가 찾아낸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원래부터 내장되어 있던 프로그램이었다. 원래부터 저 병사들은 처음 가동한 시점으로부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기될 계획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어딘가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불청객이 들어온 모양이야.>

미리 녹음된 음성 메시지인 듯했다.

<이 메시지는 누군가 프로그램의 정체를 소리 내서 말했을 때 자동으로 재생되게 설정되어 있다. 여기선 자네가 어디의 누구인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어. 사뭇 안타깝다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누구의 것인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건 분명했다.

<로봇을 탈취하려고 하는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고, 설게를 조사하려는 경쟁자일 수도 있겠군. 아니, 그저 우리가 마음에 안 드는 방해꾼일 수도 있겠어⋯⋯. 하지만 덕분에 수고를 덜었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 앞에 숫자들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05:00이었다. 눈을 한 번 깜빡이자 04:59로 바뀌었고, 한 번 더 깜빡이니 04:57이 되었다.

그 의미는 간단하다. 시한 폭탄이었다.

<이제 이 소체는 기폭할 거다. 이번 세대의 소체들은 하나가 이렇게 폭발하면 모두 같이 폭발하도록 설계했지. 세대 교체를 늦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다. 컴퍼니의 최대 이익도 보장될 테고. 모두 자네 덕분이다. 고맙군.>

메시지 재생이 끝나자마자 홀로그램은 사라져 버렸다.

근처의 유닛들이 동시에 폭발한다면 이 열차가 받는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쩌면 더 이상 운행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피해로 번질 수도 있다. 물론 최악의 상황을 무력히 기다리진 않아도 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녹음한 사람이 누구든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이나 잠재적 위험 같은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회사의 이름은 물론이고 로고나 간접적 정보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잘못되었다.

세경의 머릿 속에서 어떤 스위치가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목소리가 귓가를 은은히 메웠다.

──뭘 망설이지? 힘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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