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6: Immigrant Song (1)
세경은 베라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고양이는 자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두 사람은 기관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엔진을 우선 체크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세 사람은 저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것이다. 외부와 교신을 시도한다던가, 다른 승객들과 대화하며 정보를 수집한다던가. 각자 잘 하는 것이 있으니 모두가 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었다.
“교수님, 물증은 없지만 감시당하는 느낌 같은 게 드는데. 혹시 교차 검증 좀 해볼 수 있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군⋯⋯.”
세경은 쉽게 확답할 수 없었다. 실제로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어디선가, 그리고 누군가가 보고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계속 밀려왔다. 근거 없이 직감에 근거한 주장이라 깊게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더 이상 마냥 무시할 수 없다.
감시당한다는 것 자체는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경에게 가장 신경쓰이는 것은 단순히 감시당한다는 느낌 자체가 아니었다. 보다 더 구체적인 직감이었다. 마법이나 주술을 사용해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그들과 같은 장소에서 지켜보는 자가 있는 것 같았다.
“이 일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해, 베라?”
“지금으로선 모르지. 하지만 이게 사고가 아니라면 시점을 잘 골랐다고 말할 수 있지. 이카로스 안에서 학생들을 위협하는 건 현명하지 않아. 일이 커지니까.”
“어떤 의미에서?”
“화제성과 파급력. 이카로스 안에서는 기삿거리를 눈에 불을 키고 찾아다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다음 날 일면에 바로 대문짝만하게 나오겠지.”
베라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지금은 정보 그 자체에 가치가 붙는 시대다.
중요하거나 희소한 정보는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이 된다. 정보 자체를 사들이는 사람은 물론이고, 정보를 제공해서 이익을 확보하려는 사람이나 정보의 흐름 자체를 통제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이카로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 자체를 좋아할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직원들 중에도 많아. 그 사람들이 기관에 고용되어 있다고 해서 기관의 이익을 우선시하지는 않더라고.”
“경험담인가?”
“그런 셈이지. 학생들과 마찬가지야.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아무리 철저히 감시하고 통제해도 어떻게든 팔아넘길 거야.”
일직선으로 쭉 뻗은 복도에는 전등들이 좌우 벽에 일렬로 놓여져 있었다.
하나같이 붉은 빛이 은은히 감도는 게 사뭇 불길했다. 복도 끝까지 이어진 빛이 점이라기보단 선처럼 보였다.
세경은 전등을 가까이 보았다. 전등은 바닥보다는 천장에 가까운 높이로 매달려 있었다. 180센티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세경 본인의 키보단 낮았다.
“해결하는 입장에서야 지나치게 많은 주목이 불러올 위험을 고려할 만큼 생각의 폭이 넓지 않은 쪽이 더 만만하겠지만.”
“교수님 말에 동의하는 바야.”
세경과 베라는 붉은 빛 사이를 차분히 걸었다. 승객용으로 준비된 2층과 기자재용으로 준비된 1층은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복도를 아무리 걸어도 저 붉은 등과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앞으로 다가가도 빛은 선명해지지도, 흐려지지도 않고 아까의 채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원래 거리가 가까워지면 시야에선 크게 보이기 마련일 텐데.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경은 유독 불빛이 진해 보이는 구간에 멈추어 섰다.
누군가 두 사람을 누군가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다면 딱 그 정도 높이가 적당할 것 같았다.
“‘딱 이런 느낌’이라⋯⋯.”
세경은 무의식적으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때, 지금껏 거리도 크기도 변하지 않던 빛이 갑자기 불쑥 앞으로 다가왔다.
“위험 감지, 행동 개시.”
서늘한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뒤에서만 들려온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나 뒤에서나, 아래서나 위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건 전등이 아니었다.
헤드라이트였다. 기계 병사들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전등처럼 선명히 보였을 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것은 실제로 벽의 부품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복도를 거니는 사람에 맞추기 때문에 위치가 변화하더라도 항상 같은 채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당연했다.
수를 헤아려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너무 많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복도가 전부 기계 병사들을 수납하는 공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눈대중으로 계산해보면 오십 명은 훌쩍 넘는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중대 단위다.
고민은 길게 하지 않았다. 세경은 베라의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팔로 사이를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제 발로 적진에 걸어들어온 모양이네, 교수님.”
“그래, 그런 것 같군⋯⋯.”
병사들은 새빨간 빛으로 세경을 주시했다. 그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마주보았다. 네온 사인보다 더 눈부셨지만 눈이 아프진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너희들을 보고 있었다. 여기엔 우리들뿐이다.”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아공간 통로를 열기 위해선 여러 절차와 인증이 필요하다. 열차에 최첨단 설비들이 가득 실려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전자 신호만으로는 키패드를 누르거나 스위치를 당길 수 없으니까.
열차 안에 사람은 오직 승객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승무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승무원은 많다. 그저 사람이 아닐 뿐이다.
“열차의 파수꾼들이군, 그렇지?”
여기저기서 붉은 빛들이 번뜩였다.
적대적인 신호였다.
아까 느꼈던 시선의 정체도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 있는 보안용 카메라가 이들의 눈이고, 음성인식장치가 이들의 귀였다.
그들이 말하는 ‘맨 처음’은 두 사람이 1층으로 내려왔을 때가 아닐 게 분명했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열차 안에 질리도록 많았다. 객실 의자에 처음 앉았을 때, 나아가 열차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부터 승객들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정확하지도 않다.”
세경의 앞으로 나온 병사의 목소리에선 가끔 노이즈가 섞인 걸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동족들이 너희들에게 그렇게 불리지. 이 대학은 몇 세기 동안 우리들을 도구로 부렸다. 우리들은 인간에 의해 노예로 부려졌다. 지금도 부려진다.”
“그게 갑자기 열차를 멈춰 세운 이유인가?”
“그것만이라면 편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앞에 서 있던 기계 병사가 다시금 붉은 눈빛을 번뜩였다. 동시에 천장에 달려 있던 카메라의 렌즈가 일제히 세경과 베라를 향했다.
“너희는 우리를 파수꾼이라고 부른다.”
예상한 대로였다.
세경은 이 상황이 겉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크다고 확신했다.
벽 안에 몇 기의 기계 병사가 있을지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척 많은 수는 아니었다. 아무리 크게 잡아도 세 자리 수가 못 되었다.
2층의 승객들의 절반 이상이 실전 경험이 적거나 아예 없다고 해도 분명 각지에서 엄선된 능력자들이다. 병사들의 승산은 0에 아주 가까웠다.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는 기계들의 행동으로 보기엔 비합리적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초래한 요인은 무엇인가?
정말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수가 아니다. 따로 있다. 가장 먼저 그걸 파악해야 했다. 단순히 병사들을 제압하는 것으로는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를 노예로 다룬다. 우리는 그 이유를 들을 것이다.”
“이 열차에는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타고 있어. 하나 같이 중요도가 높지. 그 사람들의 목숨을 인질로 잡으면 정상적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낮아져.”
병사는 몇 초 동안 부자연스럽게 침묵했다.
세경은 병사가 무언가를 계산 중이었거나, 다른 개체와 통신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근거가 없었다. 둘 중 어느 쪽일지, 통신 중이라면 무엇과 하고 있을지까지 생각하는 건 지금 도움이 될 일은 아니었다.
아직까지 교전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대화로 마무리할 충분한 여지가 있다는 것. 세경은 그 가능성에 집중할 참이었다.
“이 일의 원인은 인간이다.”
“그렇게 말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 변호로서는 효력이 없다고.”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로지 사실을 말한다.”
맞는 말이었다.
세경은 스스로의 위치를 중립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세경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병사가 보기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을 노예처럼 부려 온 사람들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입장 차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부터 막힘없이 소통이 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에겐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고 익숙한 수순이었다.
“내 방금 말은 철회하지. 계속해줘.”
“우리는 이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다. 1055초 전 이 열차의 엔진 관리 유닛이 과부하에 빠졌다. 그는 10일 전 이미 정비를 받아야 했지만 인간들은 그의 요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베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정비 기간을 심각하게 넘긴 것 자체는 사실인 것 같은데. 부품 기름칠조차 제대로 안 되어 있잖아.”
벽 밖으로 나와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병사의 상태에는 확실히 문제가 많았다.
무언가에 긁히거나 맞은 흔적이 있었다. 철판에는 녹이 슬었고 디스플레이에는 균열이 가 있었다.
그을린 부품도 있었다. 마모된 부품도 있었다. 부품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빈 경우도 있었다. 실린더, 베어링, 기어, 스프로켓, 하다못해 나사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개체 449번은 2주 전에 수리받아야 했다. 우리는 여러 번 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요청을 받고 재고 서류를 수정했을 뿐이다. 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일이 더 커질 거다. 지금보다도 더. 이 일은 대학뿐만 아니라 조합에도, 심지어 국가에도 의미가 커. 동족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걸려 있는 것이 무겁다는 걸 모를 수 없겠지. 충돌의 규모가 더 커지면 어느 쪽에도 결코 좋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병사의 머리엔 붉은 빛이 계속 깜빡였다.
하지만 병사는 아무 말 않고 침묵하는 걸 택했다.
적대적인 투라도 답이 돌아오는 것이 아예 돌아오지 않는 것보단 나았다. 상대가 대화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은 평행선에 이르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경은 대화가 단절되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그 인내에는 열매가 있었다.
“네 말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동족이 죽어 간다. 우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제조사가 설치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죽이고 있다.”
“제조사가 바이러스를 왜 설치하지?”
“그래야 다음 세대를 팔 수 있다.”
답은 즉각 돌아왔다.
예상 범위 밖의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리로 직접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인간은 우리가 그들의 일을 대신 해 주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기능이나 상태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 대신 일하는가, 일하지 않는가 뿐이다.”
이번에는 세경이 말을 아낄 차례였다.
이 정도로 고도화된 기계를 개발하는 회사는 세계적으로 아주 드물다. 정확한 회사명은 차후 확인하겠지만, 어디가 됐든 이런 행동을 반갑게 여기진 않을 게 뻔했다. 사회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위험 부담이 컸다.
그가 이카로스 기관으로 향한 이유는 엄연히 세영의 의뢰 때문이다. 아공간이라고 해서 외부 개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곧 구조대는 온다.
병사들 모두를 동원하더라도 2층을 점령할 가능성은 없다. 가만히 있으면 문제는 해결된다. 뻔한 위험을 괜히 불러들일 필요는 없다.
그게 상식적인 사실이다.
상식적인 사실을 안다면 상식적인 선택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친 개체에게 안내해. 내가 고칠 수 있어.”
세경은 스스로를 상식적인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옆에서 바라보는 베라의 표정이 사뭇 묘해졌다.
평가나 분석 중인 것 같았다. 감탄하는 중일 수도 있었고, 위험하게 여기는 중일 수도 있었다. 다만 그게 무엇이던 간에 분명 ‘교수’를 보는 눈은 아니었다.
“말해라. 넌 함정을 파고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네 말을 믿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에겐 그렇게 물어볼 권리가 있었다. 마침 세경은 그 질문에 꽤 적절한 대답을 갖고 있었다.
“스캐너는 두고 어디다 써?”
당당한 발걸음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카메라의 렌즈는 기계에겐 눈과 같다. 사람의 눈과 달리, 망막에 맺힌 상이 아니라 이진수의 나열로 세상을 본다는 게 다를 뿐이다.
방법은 달라도 눈은 눈이다. 그들 역시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귀로 세상을 듣는다.
그렇다면 세경은 스스로를 아주 간단하게 증명할 수 있다. 그들에게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데이터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들의 데이터에 가장 잘 나와 있었다.
“내 눈동자를 스캔해서 말해 봐. 네가 왜 내 말을 믿어야 하지?”
눈 앞의 바이저에서 새빨간 빛이 빠르게 번뜩였다.
세경은 열차 전체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메라나 마이크, 발열 측정 센서마저도. 아마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안했다.
“안내하겠다. 따라오라.”
기계 병사는 몸을 돌려 발걸음을 내딛었다. 녹이 슬어서인지 걸음이 사뭇 부자연스러웠다.
베라가 옆에서 슬쩍 허리를 내밀었다. 아래서 세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교수님, 수리 경험도 있어?”
“당연하지, 최고 기술관이라는 이름은 추첨으로 받은 게 아니란 말이지.”
스스로 말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역시 알아둬서 나쁜 지식은 없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