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그 날 아침은 예상 외로 맑았다.
구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빛이 선명히 내리쬐었다.
입학식이 포함된 학기 첫 주도 학생들에겐 편한 시간이 아니다.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할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정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첫 주에는 강의실을 옮겨다니며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시험하고 결정을 내린다.
물론 교수들에게도 편한 시간이 아닌 건 마찬가지다. 다만 세경은 강의 담당이 아니라 적어도 그것으로부턴 자유로웠다.
세경은 다른 학생들처럼 강의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다만 강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수업에 귀 기울일 마음도 없었다. ‘마법학 총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얼마나 지루한 과목일 지는 쉽게 알 수 있다.
다루는 내용은 지나치게 방대하고, 시험 출제는 매우 까다로우며, 그렇게 공부하더라도 실기와 무관하기 때문에 성적 반영 비율은 낮다. 인기 없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많은 학생들 중에 한 명, 오직 이 지루한 수업에 지금껏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한 학생이 있다.
다른 학생들로부터는 존경과 선망을, 국가로부터는 극진한 대우를 받는 학생회장. 20대의 반도 지나지 않은 때에 이미 대마법사라는 칭호를 얻은 사람.
미카엘라 레제블라트.
‘태양(太陽)’이라는 칭호 하나가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설명한다.
세경 역시 그 학생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강제력은 없다. 늘 그렇듯 예의를 갖추어 거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학생회장의 초청이라면 결코 흘려넘길 수 없다.
‘바쁜 비버’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 이름은 무척 유명했다.
졸업도 하지 않았건만 미카엘라는 이미 가르침을 받는다기보단 주는 쪽이다. 아직까지 학생이긴 해도 일이 많으니 학교 내에 체류하는 일이 드물다. 체류 차 학교에 돌아오는 것 자체가 교내신문의 제1면을 가득 메울 정도다.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추종자도 여럿 있다고 한다. 정오엔 입학식도 예정되어 있다. 시간을 오래 끌면 분명 끝날 때쯤엔 사람이 붐빌 게 분명했다.
만나고자 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었다.
여럿 부른 것도 아니고 세경 한 명만을 콕 집어 와 달라고 한 것이다. 좋은 일 같기도 하고, 액땜 한 번 심하게 치를 것 같기도 했다. 신경쓰이는 점이 무척 많았다.
물론 최악의 경우라도 직접 맞붙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다. 한 번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시덥잖은 술수를 부릴 사람 같진 않았다. 어차피 피하고 싶다고 계속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단숨에 해치우는 게 세경에게도 더 편했다.
교실 문은 이미 반쯤 열려 있었다. 세경은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틀을 지나치자 종처럼 맑은 소리가 울렸다. 띵동.
“오셨군요. 약속했던 시각까지는 아직 십여분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소리에 맞추어 돌아보는 시선을 여럿 느낄 수 있었다. 어쩐지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사람이 많았다. 미묘하게 적대적인 것도 종종 있었다.
창가에 서서 책을 넘길 뿐인데도 미카엘라는 실내의 그 무엇보다도 강렬히 시선을 끌었다.
책 덮는 소리가 났고 의자 밀어넣는 소리가 뒤따랐다.
“날이 꽤 괜찮지요. 함께 아침 공기를 느낄 수 있어 기쁩니다.”
예전에 보았을 때도 느꼈었지만, 그녀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앳된 느낌이 강했다.
살짝 푸른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까지 내려와 있고, 보랏빛 눈동자에서는 마주 보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묻어난다. 차분한 시선 속에는 보는 사람의 경계심을 푸는 마법이라도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기서 적이 아니야’.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만난 지 일 분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 그렇게나 인기가 많은지 알 것 같았다. 결코 무시하거나 모른체 할 수 없을 만큼의 마력이 엿보였다.
“난 약속은 칼이야. 학생회장의 요청을 묵과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운 침묵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길진 않았다.
느리게 웃더니, 날 보다가 앞으로 한 걸음 걸어나왔다. 눈이 마주쳤다. 둘 중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듣기 좋은 말씀을 너무 해주셔도 곤란한데요.”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야.”
강의실의 공기는 점점 더 매서워졌다. 명확한 적개심은 아니었지만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그제야 미카엘라에겐 수없이 많은 ‘팬’들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새로 들어온 교수든 뭐든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슈퍼스타를 감상할 시간을 방해하고 있으니 아니꼽게 보이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너무 미묘한 감정들이라 오히려 대처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이 났다. 미카엘라는 정말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생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이 모든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유명세를 이용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었다. 그냥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태도가 그녀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바로 그 점이 제일 낯설었다.
“그래서, 학생회장께서 내게 무슨 용건인지 물어도 될까?”
나름대로 격식을 갖추어 불렀지만 강의실 앞쪽에서 누군가 째려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 딴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모양이다.
세경은 한숨이 나오는 걸 잘 참아냈다. 인기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건 버겁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작 장본인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 때 더욱 버겁다. 하지만 가장 버거운 건 강의실의 창가에서 소문의 학생회장과 마주본다는 상황 그 자체다.
차라리 자리를 바꿀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보였다.
“전장에서 머무는 수 년 간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매일 들었습니다. 끝을 모르고 밀려드는 괴이의 파도를 혼자서 몇 번이고 막아내고, 공격전과 방어전을 불문하고 활약하며 인류가 터전을 탈환하는 데 무척 기여하셨다는 걸 알고 있어요. 직접 뵙고 싶었을 뿐이에요.”
나른한 웃음. 그녀의 전매특허에 가까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보고 반하지 않는 사람을 양 손으로 꼽기 어렵다고도 한다. 이유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코트가 잘 어울리는 남성이라고 들었습니다. 소문대로군요. 뵙게 되어 기뻐요.”
하지만 직접 보니 매력적이다 아니다를 떠나 놀랍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차분한 느낌을 지닌 사람이 이토록 건조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미카엘라는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세경은 맞잡아 악수했다.
“칭찬 고마워. 패션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잘 해내고 계신 것 같은데요?”
세경은 어깨만 으쓱일 뿐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놓을 수 ‘없었다’. 무슨 옷을 입는 게 좋을지 고민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늘 느낌이 오는 걸 집었고 느낌이 오는 걸 입었다. 그게 다였다.
“학장단에선 당신의 소개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려고 했지만 그럴 순 없는 일이지요. 당신과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이 기관의 진화에 꼭 필요한 일이니까요.”
“직권으로 통과시켰다 같은 말로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야?”
“맞습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시든 전 당신이 이 학교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떠보는 건 아닐지 경계했지만 그 눈을 보면 의도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굳이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언제나 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어?”
미카엘라는 잠시 말을 멈췄다. 조심스레 대답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교수진들은 학생들이 늘 지도자라는 권위에 따르시길 바라지요. 학장들도 교수들이 고용자라는 권위에 순응하길 바란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든 교수진이든 학장이든 또 그 안에서 서열을 나누죠. 서로 순위를 만들어 줄을 세웁니다. 그런 순위 따위 전장에선 아무 의미 없는데도.”
확실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선 괴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능력자 양성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재학생들 대부분이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직관으로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괴이의 파도에 직접 맞서 싸운 적이 있다는 것. 법도 상식도 없이 살아남기 위한 투쟁만 존재하는 세계가 어떤 느낌인지 안다는 것.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숨을 삼키는 동안 바로 옆에서 말없이 이를 악물어본 적이 있다. 계측기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힘을 갖고 있더라도 모든 걸 지켜낼 수는 없다는 걸 실감한 적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경험은 사람을 바꾼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든 부정적인 방향으로든 크게.
“누구나 거목이 되고 싶어하지. 하지만 정말 거목이 될 수 있는 건 폭풍을 견딜 용기가 있는 사람뿐이야.”
세경은 조금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자 학생회장은 입가를 가볍게 밀어올리더니, 한 술 더 떴다.
“저는 이카로스가 황야가 되길 바라요. 온실이 아니라.”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해도 되는 입장인가, 이 사람? 다른 학생들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화 내용이 아예 안 들릴 정도로 멀진 않다. 소리를 차단했나 싶어서 살짝 둘러보면 그것도 아니다.
“기관의 가르침을 따르며 졸업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들려줄 말은 아니지 않나?”
“졸업하라는 대로 졸업해봐야 세상의 부품 중 하나가 될 뿐이지요. 전 이카로스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 자기 갈 길을 스스로 개척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당당한 태도다.
부주의해보일 수 있지만 분명 맞는 말이다. 테이블 밖에 있는 사람에겐 병사도 여왕도 다 똑같다. 전진하는 방법이 다를 뿐 기물은 기물이다.
“아직 내게 제대로 용건을 말해주지 않았어. 기억하지?”
세경은 아직 회장의 용건이 무엇인지 듣질 못했다.
사소한 일로 부르진 않았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녀는 국가의 중대사 논의과정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다.
“당신께서 여기에 오신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번거로우시겠지만 교류회에 발을 들여주셨으면 해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들키지 않을 거라 여기지도 않았다. 여기서 대답이 느리면 분위기가 더 묘해질 것은 뻔했다. 그렇다면 정면에서 맞받기로 했다.
“내 신청서를 직접 수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따로 있다고 하니 어리둥절해지는데.”
“순순히 다 말씀하시리라곤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정교하게 추궁할 순 없어요. 하지만 이카로스 안의 활동은 결국 제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거예요.”
아무래도 그 때 나눈 대화까진 알지 못하는 모양이다. 세영이 준비했던 도청 대책에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카엘라의 말도 사실이다. 이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잠재적 위협을 하나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세경은 협상에 본격적으로 임하기 했다.
“이번 일등상은 꽤 굉장하다고 들었어. 사실이겠지?”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회장쯤 되면 뭔가 아는 게 있는 모양이다.
상대가 상대다보니 큰 수확이 있으리라 기대할 순 없지만, 작은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난 사고도 여럿 있었다고 들었어. 교전도 발생했고.”
“소문은 역시 빠르네요. 개인적으로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큽니다⋯⋯. 그 정도의 물건은 사람들을 유혹하기 마련이니까요.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이 학교 안이든 밖이든 몇 명이나 있을 지 모르겠어요. 걸맞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명성에 걸맞는 용도로 쓰일 텐데.”
짧은 한숨이 들렸다.
한숨보다는 탄식에 가까웠지만 내막은 묻지 않기로 했다. 말해줄 마음이 있었다면 애초에 좀 전에 말을 거기서 끊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셋 다 하나 같이 흘려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첫째. ‘진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즉 겉에서 보는 것보다 더 큰 잠재력을 갖고 있거나, 겉에서 보기엔 그 용도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물건일 수 있다.
둘째. 분명한 용도가 있는 물건이다. 따라서 단순히 관상을 위한 건 아니다.
셋째. 학생회장 본인은 물건이 누구에게 들어가게 될 지를 걱정할 정도로 그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쩌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큰 물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일정이 예상보다 중요해진 셈이 되었다. 성가시겠지만 그는 전혀 곤란해보이지 않았다. 예정된 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세경은 이쯤해서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두 사람 사이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반지, 잘 어울리네. 선물받은 거야?”
미카엘라의 오른손 검지에는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어쩐지 낯익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서 본 것인지는 기억해낼 수 없었다.
“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받은 거에요. 역사 깊은 유물이기도 하고, 마력도 많이 담겨 있지만, 행복한 시간을 되새기게 하는 제 보물이지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즐거움이 조금씩 묻어났다. 그녀의 눈동자에선 훨씬 더 깊고 무거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 ‘소중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동안 줄곧 옅게 웃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사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결코 손해 볼 일은 아니다. 누군가를 이토록 밝게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건 훌륭한 사람의 덕목이다.
“나중에 한 번 소개나 시켜 줘.”
벽에 걸린 시계를 돌아보니 열한 시 사십 분이었다. 입학식까진 이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 무시할 예정도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를 더 붙잡아둘 수 없었다.
“기꺼이. 필연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테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시금 목례했다.
어쩐지 강의실을 나서는 걸음이 무척 무겁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 말이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세경이 불현듯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 해야 했던 말을 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일이 갑자기 늘어났다.
복도에 잠시 멈춰섰다. 무엇인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힘주어 좌우로 흔들었다. 생각에 멍하니 잠겨 있을 여유는 없었다.
신입은 신입이다. 입학식에 지각해선 면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