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7: Free Bird
141의 흉곽에 표시된 타이머는 이제 4분 5초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더 없어지면 141의 내부 회로는 그대로 폭발한다. 혼자만 폭발하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있던 모든 동세대의 소체들까지 길동무로 삼을 테고, 그 과정에서 이 열차도 덩달아 손상을 입을 게 분명했다.
피해가 얼마나 클지에 대해선 어림짐작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결코 작진 않을 것 같았다. 꼭 기계 병사들만 폭발하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기계들도 같이 폭발할 테니까.
141은 여전히 한 마리의 짐승처럼 구속을 풀기 위한 발버둥을 계속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슬로 묶여 있기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할 뿐이다. 폭주 상태는 전혀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사슬이 끊어질 가능성은 없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세경은 여전히 판단력을 날카롭게 발휘하고 있었다. 곧 3분 대에서 2분 대로 바뀔 것이다. 다행히 그 짧은 순간 동안 알아낸 것들도 있었다.
첫 번째, 폭탄 같은 별도의 요인 때문에 폭발하는 게 아니라는 것. 따로 붙여진 것이 있었다면 아까 메시지를 듣기 전 141의 내부를 투시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오작동하는 모듈들과 기능을 잃어버린 관절 제어 기구들이 다였다.
두 번째, 누가 됐든 폭발을 야기하는 것은 기계 병사들의 설계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라는 것. 개인이 아니라 팀 단위로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메시지를 녹음한 사람이 기계 병사들의 ‘세대’를 전환할 것을 명령할 수 있고 회사 전체의 이익을 고려할 만큼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 두 가지 사항을 종합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개인의 일그러진 욕망이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전 세계의 누구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초거대기업 차원의 행동 방침이라는 것.
이 상태에서 외부에서 물리적, 전자적으로 간섭했을 때 즉시 자폭하는 기능을 넣었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폭발 자체를 막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막기만 하려고 하는 게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다. 단기적으로 생각해선 안 되었다.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었다.
메시지에서는 ‘한 소체가 폭발하면 다른 소체들도 함께 폭발한다’고 말했다. 남은 시간이 0이 되면 순간 모든 소체가 동시에 폭발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의 지각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짧을지언정 141의 폭발이 다른 소체들의 연이은 폭발로 연결되는 때가 분명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그 폭발들을 연결하지?
이번에는 그걸 생각할 차례였다. 유력한 후보로는 열이나 소리, 신호 등이 있었고 어느 쪽이든 세심히 대처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평소보다 더 신중히 대응할 생각이었다.
세경은 눈썹 하나 올리지 않았고 입꼬리 한 번 움찔이지 않았다. 그는 집중하고 있었다.
해결책을 알아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해결책은 이미 알아냈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 이상으로. 여러 개의 ‘해결책’ 중 지금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다. 과하지 않도록, 지나치지 않도록⋯⋯.
──지나치다니? 계속 그걸 신경쓰고 있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 어디에도 다른 사람이 있을 리 없었지만 세경은 내심 그게 누구의 목소리인지 짐작하고 있었고 확신하고 있었다. 귀 기울이고 싶았기에 안 들리는 척 했을 뿐이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 해결책으로 충분할까?” 돌아보니 역시나 예상한 대로였다. 공주가 서 있었다.
세경은 아직까지 이 여성형 존재에 대해 이름 외에는 아무 것도(사실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 눈이 부실 만큼 선명한 존재감과 외모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세경의 적이 아니라는 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아군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었다.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음에도 차선을 고르는 습관은 역시 바뀌질 않는 모양이야.”
희미한 금빛이 감도는 하얀색 머리카락도,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보랏빛 눈동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지난 번에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외모적 특징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신장이라던가 체격이 확실히 지난 번과 확연히 달랐다. 기껏해야 사나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해결책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지. 이유가 뭐든 간에,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 선택은 결코 쓸모를 다했다고 볼 수 없어.”
공주는 서늘하게, 다만 확실히 힘 주어 말했다.
“더 깊이 생각해 봐. 지금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아냐.”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수단을 고려하는 기준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아닌가, 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확실한가의 두 가지뿐이라는 것. 머리로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경은 일주일 쯤 전 그 점에 대해 세영과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과거의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상부에서 내려오는 임무를 수행했는지, 또 어떤 태도로 적과 위험 요소를 대했는지. 당시에 그들은 확실한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과격하든 극단적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가장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지금도 하려면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다.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굳게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저 과거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세경은 스스로를 더 이상 전사나 군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사람을 살리는 것을 무엇보다도 우선했다.
“지난 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런 말을 하기 위함이었어?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는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공주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젓지도 않았다. 무미건조한 태도는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질문을 불러왔다. 그녀는 정말로 ‘살아 있는’ 존재일까? ‘생명’의 정의를 충족하고 있을까?
“이 세계는 매 순간 누구에게나 선택을 강요해. 모든 걸 가져갈 순 없다는 걸 받아들이도록 강제하지. 성좌나 괴이라면 몰라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좁아. 훨씬 근시안적이고 단조롭지. 당신이 해낸 일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멋진 씨앗을 맺을 가능성은 희박해.”
공주가 비웃거나 깎아내리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게 결코 아니라는 것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진심을 담아 말을 건네고 있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세경은 인간이라는 종족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는 데 서툴다는 걸 그럭저럭 잘 알고 있었으니까. 선의로 가득 찼던 행동이 언젠가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고, 무고한 사람을 살린 것이 언젠가 재난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 방침은 고정되어 있어. 나는 언제나 차악을 고를 거야. 차선조차 고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최악을 피하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로 마음먹은 바를 바꿀 순 없는 법이었다. 진솔히 걱정하기 때문에 말한 바라면 더더욱 여기서 물러날 수 없었다. 세경은 정체불명의 공주를 향해 살짝 힘주어 항의했다.
“그렇게 최악을 피한 게, 언젠가 또 다른 최악을 맞이하는 걸로 이어진다고 해도?”
“운명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몰라. 언젠가는 그 최악의 선택을 해야만 할지도 모르지. 눈에 보이는 게 최악의 선택뿐이라 해도 선택은 선택이니까. 하지만 그 순간 전까지는, 난 계속 차악을 고를 거야.”
성좌와 계약한 사람들은 그 성좌의 가치관이나 결정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힘이 성좌에게서 하사받은 힘이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일이다. 세경은 이쯤 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에게 그로부터 힘을 박탈할 권리가 있을까? 만일 공주가 그의 행보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의 힘을 잃게 되는 걸까?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에겐 양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스스로의 결정에 대한 확신 내지는 고집.
그는 공주의 정체가 무엇이든 결정한 바를 굽힐 생각이 없었다. 괴이든 성좌든, 심지어 그 둘을 넘어선 전대미문의 존재든. 분명 지난 번에도 그랬을 것이라고, 세경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반드시. 나는 그러기로 약속했단 말이지.”
잠깐, 잠깐만──,
지난 번이라는 건⋯⋯ 무슨 의미지?
세경의 생각에 잠깐 제동이 걸렸다. 본인의 생각인데도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사뭇 공포스러운 자각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고 공주는 늘 그렇듯 꿰뚫어보는 표정으로 옅게 미소를 밀어올렸다.
“그래, 예상했던 바야. 당신은 주어진 선택지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잖아?”
공주는 자기 검지 손가락을 입술 위에 올렸다. 부드러운 동작 속에는 절도와 기품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의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가끔 엿보이는 강렬한 집념이 세경의 냉정한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당신의 역할은 선택하는 게 아니야. 만드는 것이지.”
검지 손가락이 입술로부터 떨어졌다. 허공을 잠시 맴돌더니 엄지와 가까워졌다. 손가락을 튕길 셈이라는 걸 이해한 세경은 지금 그 말들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동안 두 손가락은 맞닿았고,
딱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들렸다. “또 보자.”
그리고 세경은 숨을 뱉었다. 이번에도 공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141은 아무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사슬을 풀기 위해 달그락댈 뿐이었다.
고개를 돌려 타이머를 바라보니 이제 1분도 채 남지 않았다. 0분 38초를 갓 지나고 있었다. 공주와의 대화는 10분도 넘게 나눈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제 시간은 3분도 채 않은 셈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이해력이나 판단력이 낮은 편이라곤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그 정체불명의 여성만 나타나면 지금까지 당연한 법칙처럼 여겼던 것들이 나사 빠진 것처럼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고 세 번 깊게 심호흡했다. 지금은 그런 걸 묻고 답하는 데 쓸 시간이 없었다.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무엇을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새로 한 맹세가 있었다. 그것에 맞출 생각이었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타이머는 0분 5초를 지났다. 4가 되었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3이 되었다. 또 다음 순간에 2가 되었다. 세경은 쥐었던 주먹을 풀었다가 다시 꽉 쥐었다. 그에 맞추어 타이머에 더 이상 잴 시간이 남지 않았고, 어딘가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겼다.
원래라면 그 스파크가 튀어 오름과 함께 141을 비롯한 기차 안 모든 병사들은 폭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무언가 일어날 기미도 없었다.
세경은 아무 말 없이 141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몇 초 전까지만 해도 통제를 잃은 야수처럼 날뛰던 기계 병사는 이제 조용히 제 자리에 멈춘 채였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잠했다.
고개는 푹 숙여진 채였고 사슬에 휘감긴 팔도 늘어져 있었다. 기계 병사는 동세대 소체들과의 네트워크에서 단절되어 재부팅 중이었다.
타이머가 0이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연쇄 폭발은 이미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저 설계자들이 당초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기계 병사들의 체내에는 인화성 물질이 가득했다. 141 하나만 폭발하는 것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지만, 세경이 보기에 이번 폭발은 1층에서만 마흔 개 가까이의 기계들에게 영향을 미칠 예정이었다. 그것들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량은 작은 폭격에 버금갈 터였다.
물론 그 에너지가 사람들을 공격하게 내버려 둘 필요는 없었다. 위해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충분히 써먹을 구석이 있었다. 폭발하면서 생기는 에너지는 일부만으로도 141의 망가진 시스템을 재부팅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열차에 연료로 공급해 재출발을 돕는 데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세경은 그렇게 했다. 에너지로 만들어진 파이프와 호스가 방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데는 3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세경은 끝말을 입으로 삼켰다. ‘잘 끝났군’.
그러나 세경의 마음 한 구석의 찜찜함은 가시긴 커녕 더 진해졌다. 분명 허상이었겠지만, 재부팅 중인 141의 뒤에서 달갑지 않은 것을 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른히 벽에 기댄 채 즐겁게 박수를 보내는 공주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