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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7.5: Smooth Criminal

2025/08/28 업로드

“생각한 것처럼 잘 되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을 만큼 어두운 방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 중 일부는 홀로그램이고, 그 중 일부는 대리인이지만 모두에게 공통점이 있다. 참석자 하나 하나가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라는 점이다.

“이런 식의 방해를 받을 것까지 고려하여 제품을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고요.”

“언제부터 우리가 제품의 오작동을 용납할 수 있었던가요? 당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일하는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들으면 가슴 아파 하겠는데요.”

이제 세계는 기적술사들을 매개체로 돌아간다. 기적술사의 수준이나 양은 국가 간의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1945년에 제2차 괴이 전쟁이 인류의 승리로 끝나면서 강대국들은 더 많은 인재와 자원을 수집하기 위한 노력에 혈안이 되었고 그건 지금까지 계속되어져 온다. 희귀한 기적이나 유물을 손에 넣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그 흐름을 영원히 소수의 국가들만 독점할 수는 없다. 새로운 세기의 개막을 조금 앞두고 세계의 여러 기업들이 회동을 가졌다. 여럿으로 나누어 있다면 국가의 규모나 위력에 당해내기 어렵지만, 하나로 연합한다면 오히려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계산 아래서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마제스틱 유니온, 줄여서 ‘유니온’이다. 그들은 설립된 이래 단 하루도 멈추지 않고 확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었다.

내부 구성원들은 각각의 부서에 별명을 붙인다. 예를 들면 제품 생산을 담당하는 개발부는 ‘컴퍼니’, 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재무부는 ‘리저브’, 다른 부서들을 통솔하는 수뇌인 전략부는 ‘파운데이션’과 같은 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서가 다른 것이 아니라 회사가 다른 것이다. 유니온 안에서의 구분일 뿐이다.

“실제로 세대 교체 프로토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3세대 병사들은 초능력자와의 상호작용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더 고성능의 병사들을 배치하자는 제안을 재무부가 막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던 일입니다.”

가볍게 혀 차는 소리.

“다른 부서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안이한 판단을 내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더글러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선 책임을 지는 편이 좋을 텐데요.”

예를 들어, 조금 전에 이름을 불린 남자는 앨버트 더글러스. 개발부의 책임자 중 한 명이다. 능력적 한계로 ‘수석’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이 회의에 참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그 역시 두 말하면 입 아플 만큼 뛰어난 실력의 공학자다.

다른 사람들도 결코 그에 못지 않다. 좀 전 그에게 면박을 줬던 재무부의 라비니아는 어릴 적부터 수학 방면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 옆에 심드렁히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운영부의 첸은 실전에서 그 능력을 계속 입증해왔다. 각자가 자기 분야를 이끌어 나간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난 인재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상석에 앉을 수 없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의 것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만들 하지. 보안 사고 앞에서도 부서끼리 알력 다툼을 벌이는 걸 보는 내 기분도 생각 좀 해 주겠나?”

“송구합니다, 사장.”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을 자극할 만큼 사나운 말이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다. 상석을 오래 독점하는 걸 제지할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분석부의 의견이 궁금해. 현재까지 무언가 알아낸 게 있나, 퀜틴?”

벽에 기대 있던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왔다. 군데군데 새치가 보였고 수염도 정리하지 않는 등 외모 관리에 소홀했지만 눈빛큼은 여전히 생기로 가득했다.

“화면을 봐 주십시오. 개발부에서 보내 온 데이터를 분석한 것입니다. 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프로토콜은 정상적으로 가동되었고, 폭발도 모두 일어났습니다. 그 에너지가 다른 방향으로 변조되었을 뿐입니다.”

“변조되었다면 어떤 식으로?”

“구체적인 방법까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 공간을 비롯해 여러 방면의 물리적 조작이 동시에 일어난 것만큼은 확인했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적술사가 힘을 행사하는 방향과는 전혀 다릅니다. ”

퀜틴이 손동작을 하자 화면이 바뀌었다.

“특히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시간 에너지 측면입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생명체는 생존한 세월에 비례해 시간 에너지를 축적하고, 모든 기적술사는 자신의 힘에 동일한 양의 시간 에너지를 담습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여러 개의 수치가 계산식과 함께 복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그래프 하나뿐이었다. 폭발을 잠재운 기적의 시간 에너지를 측정해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평균 수명이 백 년 남짓인 인류에게선 나타날 수 없는 수치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충격적인 건 바뀌지 않을 듯 합니다. 다른 종족의 피가 섞여 있거나, 인간으로 의태 중이거나⋯⋯ 미래에서 현재로 회귀한 인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셋 중에는 차라리 인간이 아닌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만약 세 번째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아주 위험하게 흐를 수 있었다.

“동일한 시간선의 회귀, 다른 세계로부터의 빙의나 환생은 이제 불가능해진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해당 법칙에 예외가 있을 수 있나?”

“사장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법칙을 규정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사장 본인이지요. 지난 20년 동안 아무도 우회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모두 징벌의 대상이 되었고요.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은 이것이 그만큼 이례적인 징후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낙원체’가 존재한다는 증명일지도 모릅니다.”

턱을 괸 채 가만히 듣고 있던 사장이 직후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조명 빛을 받아 드러난 팔에선 쇄골부터 팔꿈치까지 새겨진 문신 외에도 근육이 탄탄히, 모양 좋게 잡힌 걸 볼 수 있었다.

“낙원체라 함은?”

아무래도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엔 무게감이 평소보다 더 짙게 묻어 있었다.

“성좌와 괴이를 가르는 기준은 인간과 소통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뿐입니다. 소통이 되면 성좌고 안 되면 괴이인 것처럼요. 성좌든 괴이든 간에, 인간과 계약하지 않고 물질계에서 실체를 마음껏 유지할 만큼의 힘을 가진 존재. 저는 그런 존재들을 낙원체로 명명했습니다.”

“지금까진 이론상의 존재일 뿐이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하는군?”

“본 적이 없으니까요.”

퀜틴은 즉각 대답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천사장 미카엘은 그 권리로 ‘시간선에 속했음에도 그 흐름을 따르지 않는 존재’와 ‘성좌 및 괴이의 물질계 상주’를 금지했습니다. 그 힘은 지금도 우리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신화 클래스의 존재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마음대로 물질화할 수 있는 성좌나 괴이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 초능력자가 그런 존재와 계약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만 확답하기엔 이릅니다. 지금으로선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올린 이해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냉정히 말하면 가능성일 뿐이지만, 가능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숙고가 끝나고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는 동안 조명 때문에 잿빛 머리카락이 흐리게 빛났다. 의자 옆 옷걸이에는 가죽 외투가 걸려 있었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걸 낚아채 어깨 위에 둘렀다.

“사장, 외출하실 생각이십니까?”

“자네도 같이 가지, 퀜틴. 현장에선 예리한 시각이 필요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가 같이 일어났다. 퀜틴은 지명받을 것을 예상했다는 듯 망설임 없이 끄덕였다.

“나는 그 초능력자의 정체에는 관심 없어. 무얼 생각하는지도 내겐 중요하지 않아.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싶어. 직접 보는 게 데이터만큼 정확할 순 없으니까.”

“준비는 이미 끝내 두었습니다. 즉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회의실 안을 둘러보니 책임자들 모두의 시선이 사장 본인을 향해 모여 있었다. 그녀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각각 바라보다 짧게 혀를 찼다.

“기밀 누출이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하는 게 초점을 둔다. 개발부와 재무부가 책임지고 해결해. 운영부는 바깥의 동향을 체크하고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보고하도록. 보안부는 지금처럼 목표에 입각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사장의 시선이 한 번 회의실 끝을 향했다.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회의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누군가 그곳에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어깨쯤에서 한 번 묶은 여성이었다. 지금은 이미 나가고 없는 그녀가 바로 보안부의 책임자였다.

“이만 업무로 다들 복귀하지. 우리에겐 할 일이 있다.”


천장에서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사람의 목소리였지만 미리 녹음된 것이었다. 세경은 이 열차의 승무원 중 인간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바 있었다.

[곧 열차는 기존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할 예정입니다. 손님들께 불편을 드려 대단히 송구합니다. 더 이상의 문제 없이 안전히 모시겠으니 안심하시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여럿 일어났기 때문일까. 객실에 돌이오니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무언가 바뀐 것은 없었다. 무언가 고장난 것도 없었고 객실 안 구조도 그대로였다. 고양이도 평소처럼 별 생각 없이 눈을 깜빡대며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었다.

굳이 찾자면 바뀐 건 세경 본인이었다. 옆에서 베라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머릿 속이 빽뺵하게 채워져 있었다.

“1층에 놓고 온 건 없지?”

세경은 지갑을 꺼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찾으려는 것 같았다. 손이 계속 움직이는 동안 그의 표정도 천천히 굳어갔다. 잠시 지갑 안을 뒤적이던 손은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 앞에서 멈추었다. 표정은 그제야 부드러워졌다.

“그래, 확실히 없다.”

“그거 말야, 무슨 사진인지 물어봐도 돼?”

잠시 말이 없었다. 이번엔 세경이 베라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짧은 순간뿐이긴 해도 그의 눈동자 속에 분명 깊은 고민이 스쳐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릴 적에 누나와 찍은 사진이다. 와서 봐.”

베라는 그의 옆으로 가까이 붙어 지갑 안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실 누구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본다면 특히나.

“얼굴이 안 보이는데. 제대로 된 사진인 거 맞아?”

“원래는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지워졌을 뿐이지.”

세경은 사뭇 고통스러운 투로 대답했다. 다행히 아직 객차 안에 다른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세계로부터 지워진 거지. 당연히 이름도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아. 얼굴도 확인할 수 없고⋯⋯. 이 사진이 누나가 존재했다는 유일한 물증이다. 나에게 제일 중요한 물건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