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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2025/07/27 업로드

고양이를 주운 이후 이틀이 더 지나,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월요일의 여의도성모병원은 어디나 붐비지만, 3층 구석의 변칙특성과는 예외다.

능력자들을 내과적, 외과적으로 검진하는 일을 도맡는 학과다. 능력자가 되는 것이 신체 구조나 유전자 단계의 변화를 불러오진 않는다지만, 초능력과 사람 건강 사이의 정확한 관계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몇 가지 사실은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감염이나 바이러스로 몸 상태가 나빠진 능력자는 출력도 낮아진다는 것.

국가에게 있어 능력자들은 단순히 소중한 인재로만 그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일해주어야 하는 이들이다. 건강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오늘은 세경의 정기 검진일이었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그에게 누군가가 검진 결과지를 건네주었다. 그의 주치의 양미영 박사다.

“얼굴빛이 나쁘지 않은데?”

“집 정리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고 해야 할지.”

세경은 오른쪽을 흘겨보았다.

고양이가 걱정 하나 없는 표정으로 웅크려 골골대고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세경에겐 이제 확신이 있다.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확신,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확신.

자고 일어났더니 간밤 동안 방 정리가 깔끔히 되어 있었다.

자세한 방법은 몰라도 고양이가 한 것임이 분명했다.

“스스로 예상했겠지만, 여전히 아주 건강해. 흠 잡을 곳 하나 없어.”

“듣기 좋은 소식이네요. 문제 될 부분 없이 건강하다는 말씀이시죠?”

“물론이지. 초능력 관련한 검사에서도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어. 전부 정상이야.”

의사에게서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은 몇 안 된다.

그 중 최고는 역시 ‘건강하다’는 말일 거다.

지난 번 일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을까 잠시 우려했지만, 역시 별 일 없는 모양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한 성과였다.

다만 정말 궁금한 질문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초능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사용해 본 감상은 어때?”

“솔직히 낯설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능력의 방향이 꽤 많이 다르더군요. 원래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나요?”

세경은 지난 이틀 동안 자기 초능력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갓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해 거의 십 년간 사용해 온 능력이다. 그 내용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일 것이다.

단순히 방어 능력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은 이미 여러 번 들었다.

그저 이렇게 광범위한 능력이었을 줄 몰랐을 뿐이다.

“초능력을 해방했음에도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는 꽤 흔해. 능력은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법이니까. 한계를 뛰어넘겠답시고 지나치게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많지.”

“성장이라. 초능력에 자의식이라고 볼 만한 게 있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그렇게 주장한 사람도 물론 한 둘이 아냐. 하지만 경험 많고 노련한 초능력학자들은 대개 그 가설에 동의하지 않더라. 능력자 본인의 직감이 확장되고 강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일 뿐이라나.”

실제로 공주는 자기 힘을 두고 초능력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초능력과는 비교하는 게 무리일 정도로 다른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변함없다. 대체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낸 게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할 때 초능력을 얕잡아보는 것 같진 않았다.

따라서 문자 그대로 공주의 힘이 초능력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면,

대체 세경이 발휘하는 힘은 대체 뭐란 말인가?

“다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는 것에도 오류가 있지. 너도 알겠지만, 인간이 다를 수 있는 특이능력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르치며 발전시키는 것,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해방된 것,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각성하는 것.”

“예, 알죠.”

각각의 종류에 대해 특별히 정해진 이름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흔히 첫 번째를 기술, 두 번째를 초능력, 세 번째를 권능이라고 한다.

“앞의 두 경우라면 나로서도 자의식이 있기는 어렵다고 봐. 하지만 세 번째라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해.”

“여기서 인간이 아닌 존재라 함은 괴이를 말씀하시는 거죠?”

“괴이뿐만이 아냐. 괴이와 성좌 둘 다 포함이야. 둘 다 자신을 따르는 인간에게 힘을 내려주는 건 다를 게 없으니까.”

현재의 지구에는 차원문을 건너 온 초자연적, 신적인 존재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몇 세기 전 언젠가 인류의 역사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직간접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이번 세기에 일어난 비극들만 세도 2001년이나 2008년부터 시작해 작년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 없다.

그들 중 소통이 가능한 쪽을 성좌라 하고,

소통이 불가능한 쪽을 괴이라 한다.

앞쪽은 인류와 공존하고, 뒷쪽은 적대한다. 어느 쪽이든 계약을 맺은 사람에겐 특별한 힘을 내려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로부터 힘을 받은 사람들은 간혹 힘을 준 존재와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해. 실제로 계약을 맺지 않는 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겠지만.”

양 박사는 지난 번 남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매우 낮게 평가하는 모양이었다.

세경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무척 높았다. 전과도 있었다. 그는 등 뒤의 괴이를 악령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악령은 본인이었을 게 뻔했다.

괴이는 물론 초능력에 대한 지식도 없고 재능 측정 결과도 그닥 좋지 못했다.

정말 계약을 맺긴 했던 건지조차 미심쩍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계약해보신 적 있습니까? 괴이든, 성좌든 간에.”

양 박사는 시원하게 고개를 저었다.

“하하, 그럴 리가. 괴이와 계약하는 건 정말 막다른 길이야. 괴이는 인간과 서로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괴이야. 대부분은 인간의 언어 자체를 구사할 수 없고, 설령 말을 나눌 수 있다고 해도 대화 다운 대화가 되지도 않을 걸?”

“성좌의 경우에는요?”

“그것도 쉽진 않지. 성좌와 계약하는 건 성좌의 눈에 든 사람만 받을 수 있는 특권 같은 거니까. 높은 계급의 성좌일수록 더 인간을 보는 기준이 엄격한 법 아니겠어.”

생각해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이미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성좌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성좌와 계약한 사람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힘을 얻고, 그 기세를 몰아 선거에 나가 당선되는 식이다. 성좌로부터 독립된 국가의 수는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전 세계를 꼽아도 열 개도 안 될 것이다.

사전적 정의로 생각하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성좌의 통치 아래 놓이지 않은 국가는 그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은 이제 그 어떤 통신이나 연락도 거절하고 있고,

영국이나 인도는 국토를 전부 에너지 벽으로 둘러싸서 내부 상황을 알 수 없으며,

이집트나 그리스는 한술 더 떠서 아예 나라 전체가 다른 차원으로 숨은 상태다.

요즘은 일 년에 서너 번은 괴이가 차원문을 열고 나타난다. 그 때마다 천문학적 피해가 생기다. 인명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성좌가 안전과 풍요로움을 담보하며 통치를 약속하는데, 그걸 거부하는 게 어쩌면 논리적이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이 그나마 사정이 낫긴 해도 그나마일 뿐이다.

북쪽 미수복지역에도, 동쪽 바다에도 7+등급 괴이가 잠든 채 깨어날 날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니까.

“자세한 건 계약한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를 거야. 세경 씨 정도의 위치면 알고 지내는 투사 정도는 꽤 있지 않아?”

“있긴 하지만, 저희 누나가 계약서 내용은 함부로 묻는 게 아니랬거든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쓰게 웃었다.

단지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양 박사는 세경과 그의 누나를 휩쓸고 간 사건 현장을 실제로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비록 현장에 남아 있던 것은 세경 한 사람뿐이었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성별, 나이는 물론이고 체격을 포함해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고 현장에는 세경 외의 ‘누군가’가 분명 있었다. 그 사고를 통해 남동생 이외의 수많은 기억과 기록에서 일제히 사라진 누군가가.

“아, 말 나온 김에 전해야겠다. 세경 씨 누나 관련해서 고세영 국장이 할 말이 있댔어.”

세경은 짧게 혀를 찼다. 쯧 하는 소리가 분명히 울렸다.

그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고세영 국장은 같이 시간을 보내기 편안한 사람은 결코 아니었으니까.

낯익은, 그러나 자주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세경은 그 여자를 그렇게 평가했다.

“드문 일이네요. 그 사람이 이렇게 전언도 남기고⋯⋯.”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인 면이 좀 있긴 해도 배려 못 하는 여자는 아니니까.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이리로 오겠다고 했던 것 같았는데.”

“이리로요? 왜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의 문이 열렸다. 소리가 아주 거칠었다. 문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고세영 국장은 실제로 문이 부서져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사람이었다.

그녀가 전장에서 기록한 성과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왜긴 왜야. 일이 있으니까 온 거지.”

세경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봐, 그렇게 보지 마. 정말 공적인 일로 온 거야.”

왼쪽 눈 옆에 눈물점이 있긴 있지만, 세경은 저 여자가 눈물은 커녕 슬픔은 느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하얀 반팔과 청바지, 거기에 붉은 기가 살짝 감도는 금발. 한여름에는 어울려도 공무원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는 착장이지만, 엄연히 공무원이 일하러 올 때 이렇게 제멋대로 옷을 고를 수 있다는 게 그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한다.

세영이 담당하는 위기대처국은 다른 부서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대처국 사람들은 괴이와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일을 담당한다. 그녀는 실제로 현장에서 싸울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강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다.

위계질서를 통해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밖에 없다.

“미영 언니, 이 사람 좀 데려갈게.”

“검진은 다 끝났으니까 상관은 없지만, 위험한 일은 아닌 거지?”

“글쎄⋯⋯.”

세영은 세경에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을린 흔적 역력한 손이 강아지 부르듯 까딱였다.

저 섬뜩하리만큼 붉은 눈동자는 여전히 익숙해지질 않는다. 세경은 한숨 짧게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위험을 줄이려고 노력해볼 순 있겠다.”

옛 파트너로서의 정이란 건 어쩔 수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