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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Starman 2025/07/17 업로드

그 날따라 경찰서 안은 무척이나 한가했다. 난동부리는 취객도 없었고, 교통사고나 길 잃어버린 사람도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곤 새벽의 폭행 사고 하나뿐이었다.

그걸 단순히 ‘하나’라고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한 명과 여섯 명이 시비를 붙었는데, 여섯 명 전부가 초능력 보유자였는데 손가락 하나 못 대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저도 처음 듣곤 어이가 없어서 여러 번 다시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던데요.”

박 경감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영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등급이 얼마건 간에, 초능력자들 사이의 일이라면 경찰의 소관은 아니다. 담당하는 기관으로 넘기는 게 원칙이니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초능력이 없는 사람이 초능력자에게 저지른 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선 규정이 없다.

확실히 자주 볼 법한 일은 아니다.

곱씹을 수록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경감의 직감은 이 사건이 보이는 것만큼 간단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피의자는 아직 유치장에 있지?”

“예. 여섯 명을 두들겨 팼다는 사람 치곤 얌전하게 잘 있습니다.”

“조서 좀 보여 줘. 어떤 녀석인지 좀 봐야겠다.”

최 경위는 품에 들고 있던 서류를 경감에게 건넸다.

두 번 세 번 조사했다는 게 거짓말이 아닌지 양이 꽤 많았지만, 다행히 경감은 많은 양의 서류를 처리하는 것에 익숙했다. 경감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디 보자. 정세경, 남성, 스물 여섯 살. 마포구에 거주하고, 같이 사는 가족은 없음. 폭행 사고를 일으킨 계기는 ‘하면 안 되는 말을 했기 때문에’⋯⋯. 다른 이유에 대해선 말 안 하던가?”

“본인은 아무 말 안 하긴 하는데, 얻어맞은 사람들의 말로는 피의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원래 가족 중에 누나가 없는 사람인데, 옛날에 자기 누나를 어떤 일로 잃어버린 것처럼 자꾸 말한댑니다.”

경감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설령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도 여전히 말이 안 되는 점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능력 없는 사람이 초능력자 여섯 명을 폭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본인은 이렇다 할 부상 하나 입지 않고서. 초능력자들끼리 싸움이 났다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스물 여섯 살이면 대학교를 졸업한 지 기껏해야 이 년밖에 지나지 않았을텐데.

“전과는 없었지?”

“예. 모범적으로 살았던데요. 기록도 튼튼하고요.”

박 경감은 깊이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은 결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다른 기관에 넘길 때 넘기더라도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한 번 만나 봐야겠어.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

“지금 바로 준비하죠.”

“고맙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최 경위가 말 없이 눈을 끔뻑였다. 까다로운 상관에게서 어떤 지시가 내려올 지 느낌이 안 올 때마다 짓는 표정이었다.

박 경감은 턱짓으로 반대편의 전화기를 가리켰다.

“재정관리국에 연락해 주겠나? 어쩌면 그쪽 소관 업무일 수도 있으니까.”


청년은 박 경감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키가 크고 건장했다.

평범한 주먹 싸움이라면 정말 여섯 명을 일방적으로 때려눕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검은 코트의 청년이 때려눕힌 건 죄다 초능력 사용자들이었고, 그 중엔 국가기관에 등록된 사람도 있었다.

국가에 등록된 초능력 사용자, 다시 말하면 국가의 인정을 받은 초능력자.

세간에선 그런 사람들을 칭하는 말이 바로 헌터, 또는 사냥꾼이다. 평범한 사람이 사냥꾼을 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럿이서 무리를 형성해 한 명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집단폭행이라고 해. 뉴스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겠지?”

청년은 심드렁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경우엔 한 명이 여럿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니, 법적 요건에 들어맞지는 않겠군. 솔직히 난 이번 건이 우리 담당인지도 잘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좀 들려주지 않겠나?”

“진술할 건 다 했습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으니 되갚아 주었을 뿐이예요.”

“어떤 말을 들었던 것인지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어서 말이야. 자네에게 얻어맞은 사람들이 진술한 바를 우리가 믿기보단 자네에게서 직접 듣고 싶은데.”

한숨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은 분명했지만, 경찰 된 입장에서 범죄 혐의자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청년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뭐라고 말하덥니까? 그 녀석들은.”

“자네는 사고로 누나를 잃은 게 아니라 원래부터 누나가 없었던 것이고, 그걸 지적했을 뿐인데 화를 내면서 자기들을 공격해 왔다고 진술했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정정해 보게.”

“우선, 전 분명 어릴 적에 누나가 있었어요. 10여 년 전 우리 집에 내 나이 또래의 여자가 한 명 있었다는 건 서류 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비록 이름도 뭣도 확인할 수 없긴 해도⋯⋯. 지갑에는 같이 찍은 사진도 있죠.”

“부모님은 지금 자네가 여기 있는 것, 알고 계시고?”

청년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아까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그는 곤란해하는 듯 보였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쉽게 고르질 못하는 것 같았다.

박 경감은 그에게 대답할 의지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다.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제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이렇게라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나?”

“아뇨, 문자 그대로 어디 계신지 모릅니다. 5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군요.”

궁금한 점들을 해결하려고 불렀건만, 물어볼 수록 궁금한 점들이 늘어날 뿐이다. 경감은 이제 정세경이라는 청년이 가진 수수께끼가 한 두개가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하는 분들이셨는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어머니께선 연구자셨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연구하고 계셨다는 것 외에는 모릅니다. 아버지께선 투사셨고, 최전선에 계셨습니다. 아는 건 그게 전부고요.”

투사라는 말에 경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제야 겨우 그럴듯한 실마리 하나를 잡은 것 같았다.

“가족 이야기는 더 묻지 않는 게 좋겠군. 즐거운 기억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해명할 것이 하나 정도는 더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을 때렸잖아.”

“실제로 때린 것 맞아요. 아시잖습니까, 어떻게 됐는지. 골절도 확인됐다고 하던데요.”

“그래. 내가 정말 궁금한 건 어떻게 초능력자 그룹을 상대로 그렇게 했는지야. 여섯 명 중에는 저랭크이긴 해도 사냥꾼이 있었어. 자네가 아무런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밖엔 생각할 수 없지.”

박 경감은 서류 내용 중 일부를 떠올려 보았다.

여섯 명 모두 공통적으로 진술한 내용이 있었다. ‘얻어맞은 건 분명한데 어떻게 맞았는지 모른다’는 것. 단순히 과정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상황이 격했을 수도 있지만,

초능력자들의 진술이라는 점에서 마냥 흘려들을 수만도 없다.

그 여섯 명은 말이 좋아서 그룹이지, 사실 깡패나 다름없다.

능력이 없는 사람과 싸운다고 초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는 건 역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이 상황이 말이 되게끔 하려면 새로운 조건을 들여와야 한다.

예를 들면,

“자네, 사실 어떤 식으론가 능력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가?”

같은 것.

박 경감은 이미 충분한 심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시치미를 떼는 것에도 엄연히 한계가 있다. 더 이상은 모른 체하기 어려웠다.

“능력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 놈들을 상대할 때 능력을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제가 제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고?”

박 경감은 초능력 관련 사건 사고를 여러 번 다뤄본 적이 있다. 친구로 지내는 초능력자도 있고, 사건이나 사적 문제로 도움을 주고받은 초능력자는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박학다식한 수준이라곤 말할 수 없어도 충분한 지식이 있다.

그래서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껏 규모나 위력이 미미한 초능력자는 여러 번 봤었지만, 자기 초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능력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잠재력과 관계없이, 초능력자의 힘은 언제나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비례한다.

물론 종종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휘둘리는 것도 아니고, 초능력 자체가 사용자와 별개로 움직인다니?

“이 녀석은 제가 공격하고 싶어서 공격하거나 방어하고 싶어서 방어하는 게 아닙니다. 제 명령을 듣지 않아요. 들리긴 하는지도 의문이고요.”

“피해자들은 일관되게 ‘무언가가 초능력을 계속 가로막았다’고 진술하던데.”

“틀린 진술은 아닐 겁니다. 그 ‘무언가’의 정체를 모르는 건 저도 다르지 않을 뿐이죠. 이 사건에서 피해자는 엄연히 따로 있고요.”

“그게 누구지?”

“그 여섯 명이 몰래 뒤쫓아가던 사람. 길가의 CCTV 한 번 쭉 보면 바로 나올 겁니다.”

한참 고민하던 박 경감은 옆에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문자를 두 통 보냈다. 하나는 최 경위에게, 다른 하나는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여전히 모든 걸 알 순 없었지만, 곱씹을수록 많은 것들이 분명해졌다. 사건은 조금씩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몇 가지 사소한 질문들뿐이었다.

아니, 여러 번 물을 필요도 없었다. 하나면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그 여섯 명은 왜 멈춰세운 건가? 상관 없는 일이었으니,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모른 척 할 수 없었을 뿐입니다.”

“좋아, 조사는 끝이네.”

너무 가볍게 대답해서 살짝 어처구니 없을 지경이었다.

별 일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세경이라는 청년은 발화능력을 가진 사람 세 명, 감전능력을 가진 사람 두 명과 사냥꾼 하나를 혼자 두들겨팼다. 여섯 명 다 흉기를 품에 소지하고 있었다.

일이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병원 신세를 졌을 것이고, 크게 잘못되었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 청년은 그런 위험에 대해선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것 같았다.

경감은 일단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세경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초능력을 제어할 수 있든 없든, 초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일은 경찰이 독단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공공질서부에 사건을 넘기게 되겠지. 필요에 따라선 자네를 다시 불러야 할 수도 있어. 알아두게.”

“필요하시다면 그렇게 하셔야죠.”

경감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세경도 따라 일어났다.

유치장 쪽으로 알아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는 아직 열 시간 가까이 더 유치장에서 머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경감은 그를 유치장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자네는 석방이야. 귀가해도 좋네.”

“그냥 가면 됩니까?”

“그래. 이대로 별 일 없이 끝난다면 다시 부를 일도 없을 거야. 그 편이 서로에게 좋겠지. 아무쪼록 건강하길 바라겠네.”

세경은 박 경감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실 쪽 복도로 향하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반대편 복도로 돌아 나갔다.

길은 이미 어느 정도 외웠기 때문에 헤멜 필요는 없었다.

동이 채 트기 전에 들어왔던 것 같은데, 밖에 나오고 나니 이미 밤이었다.

“초능력이라는 것도 정말 쓸데가 없어⋯⋯.”

세경은 가볍게 혀를 찼다.

생각난 김에 지갑을 열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폴라로이드 필름이었다. 그 안에는 세경으로 보이는 남자가 닮은 곳 많은 여자와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지 이미 빛이 많이 바랬지만, 크게 구겨지거나 찢어지는 일 없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세경은 지갑에서 필름을 꺼내 잠시 들여다보다가, 말 없이 도로 집어넣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즐겁지 않은 건 오늘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